그동안 가을은 그저 농작물을 수확하는 노동의 시간이었다.
여유로움이었을까?
시골마을 초입을 들어서는 시야엔
어느새 허리춤에 단풍으로 물들인 산들이 들어온다.
강원 홍천지방의 기온을 잊고
좀 더 살아보라던 고추가 10월 중순부터 내린 된서리를 맞아
후줄그레진 모양새로 볼품없이 서 있기를 보름 남짓,
고추대를 뽑아내고 말뚝을 뽑아들이니 주말의 반나절이 지난다.
지난 주에 타작을 끝낸 들깨를
필요로 하는 이를 위해 소분해 놓고
연탄보일러에 번개탄 4장을 들이고서야 불을 지폈다.
얼음장 같던 방바닥이 따뜻해서 좋기야 하지만,
밤중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연탄을 갈아끼워야 할 울엄니의 시간이 아프기만 하다.
시려오는 새벽달빛은
나무에서 따내지 못한 대추를 춥게 내려다 보는데,
'꼬끼오~' 하며 닭장속의 수탉들은 밤새 안녕을 나타내며
동트는 가을의 하루를 기다리고 있다.
갈빛이 봉당에 내려앉는 나절이 되어서야
방문을 나선 울엄닌,
묵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 줏어오지 말라고 하던 때와는 달리
며칠 전 산밑에서 도토리를 주워 방앗간에서 갈아온 것을
울궈내려 물을 갈아주고 있었다.
힘들어도
김장할 때 올 자식들에
묵 한사발 내놓을 마음인가 보다.
봄부터 울 뒤에서 놀던 닭들이
이제는 먹을 것이 없는 지 쪼르륵 마당으로 들어선다.
말려놓은 옥수수 토생이에서 옥수수알을 따내어 마당으로 던져놓으니
닭들은 마냥 신이 났다.
짧아진 해 만큼
나의 주말시간도 짧아진다.
가을의 시간도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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