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여름밤

돌처럼 2019. 7. 30. 06:10




여름휴가 이틀을 더해 4일동안 옥수수 수확을 한다.

알음 옥수수 판매를 기다리던 님들로부터 주문을 얻어 수확일을 맞추는데...


멧돼지들이 하루이틀 앞서 저들 끼니로 때우는데

미처 주문량도 수확하지 못할 듯 싶어 보초를 선다.


대략 짐작으로 밤 9시 반경부터 새벽까지 쇠막대기와 랜턴을 들고 밭언저리에서 서성거리며 매복을 하는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초조함과

나의 매복을 용케도 찾아내는 모기떼들의 습격에

오락가락 장맛비가 더 덥게만 느껴진다.


'보았다.'


먹구름에 뒤덮여 더 깜깜한 밤에

풀숲에서 반짝이는 형광빛을...


그 빛에 관심을 가져보니 여기저기 반딧불이가 풀숲에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엄마 손 잡고 개울가로 나가면

동네 엄마들은 달빛을 조명삼아 빨래를 하고

또래 아이들은 첨벙이며 물장구를 치던 밤,


개울둑에 앉아 검은 산능선 위로 펼쳐진 은하수를 보노라면

개울둑 위로 수없이 반짝이며 날던 반딧불이들이...



장맛비가 한차례 지나가고

더운 풀냄새가 밤공기를 채우는 시간,


어린 시절에서 처럼

반딧불이들이 날아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날아오지를 않는다.


그 중의 한마리를

손 위에 올려 놓아본다.


'아차! 모기기피제 냄새가 있겠구나!'

얼른 풀숲에 내려놓으니 그도 하던 일을 계속하는가 보다.


그들에게 관심을 두던 중에

나뭇잎에 머물던 빗방울이 작은 바람에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고라니일까, 멧돼지일까?

숨죽여 귀를 열고 있으니

밭끝쪽의 산에서 조용히 내려서는 놈이 있다.


그 쪽을 향해 나도 발소리를 죽여가며 다가서 본다.


멧돼지다!


옥수수밭으로 내려서지 못하게 랜턴을 비치며 쇠막대기로 풀숲을 내리치니

"킁" 하며 거친 숨으로 위협하다 이내 산으로 향한다.


새벽

장맛비가 다시 세차게 내려 집으로 향하고,

이튿날 아침

옥수수밭을 둘러보니...


멧돼지 승(勝)!


옥수수밭은 나의 서성거림에도 힘없이 쓰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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